Hyun Hong   WORKS. EXHIBITION VIEW. ARCHIVE. EXHIBITION. CV. CONTACT. TEXTS IN KOREAN.

 

 

작가노트 /

모던타임즈 2 / 작가노트.

사디즘 / 작가노트.

모던타임즈 3 / 작가노트.

점과 점들 / 작가노트.

모던타임즈 4 / 작가노트.

키쓰하기 좋은 곳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1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2 / 작가노트.

리크스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3 / 작가노트

 

그 외 /

나에게 사진은 어떠한 의미인가.

모던타임즈 1 / 전시서문.

모던타임즈 3 / 전시서문.

로스트 서머 (김진호 작가) 전시서문.

아파트먼트 (김규식 작가 ) 전시서문.

신이 내리다 (김규식 작가) 전시서문.

복제의 즐거움(김규식 작가) 전시서문.

형, 또 다름 형 (이은종 작가) 전시서문.

인상주의와 포토샵.

인상주의 화가 3인의 시선.

노출과 존 시스템.

고종석 글 중에서.

어머니를 기억하며.

먼꿈.

디자인 서울.

내 친구들과 나티.

메릴 스트립과 수애.

조카 은영에게.

창훈형 홈페이지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 한편.

이방인의 방/김용민.

흑백을 묻다/김현호.

모던타임즈 작가 현홍/ 박대용.

작업을 한다은 것은.

텔 미 유어 스토리.

더텍사스프로젝트 전시서문.

봄.

89학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언젠가 닥칠 일.

박제가 선생은 북학의에서 그릇 하나를 거칠게 만들면, 백성들의 마음 또한 거칠어진다고 했다. 사람은 자신들이 만든 것들과 닮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뭘 하나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어야 된다는 소리다.

 

한국은 과거에 비해 잘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의 양만큼, 그만큼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국민총생산이나 수출입액들은 피부로 감각하기 힘들다. 사실 돈의 양은 허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실제로 체감하는 것들은 그런 자본의 규모가 아니라, 자본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온갖 물적인 것들이다. 돈이 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가 그리고 구현된 것들이 사람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가, 이렇게 자본이, 양이 아닌 질로 말해질때 비로서 삶의 행복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물적인 것들은 결국 앞서 말한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들과 다름 아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온갖 정신적인 것들과 더불어 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노트 한권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크게는 도시 하나를 만들어가는 일에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지 우리는 잘 몰랐던 것 같다. 동시에 과거를 어떻게 담아내고 새것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하는 문제로부터도 많이 비켜온 것 듯 싶다. 과거의 켜와 새 것의 켜가 서로 잘어울릴 때만이 비로소 현재의 경험이 역사로 확장되고, 나라는 개인에서 우리로의 동질감과 자긍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로스트서머 전시서문/현홍.

 

지 않은 시간동안 그가 발췌해온 우리 땅의 모습이 로스트 썸머(잃어버린 여름)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됩니다. 작가의 비유가 흥미롭습니다. 올곧게 거쳐야했을 여름이란 계절을, 지금 우리가 그리고 우리 땅이 잃어버렸다고 하는 비유일 것입니다. 개발이라는 성장통’成長痛을 ‘상실한 여름’에 빗대고 있는 것이죠

 

자연의 여름은 어떠했습니까. 나무의 큰 그늘과 녹색의 호수, 풋풋한 흙냄새와 밤하늘에 울려 퍼졌던 숲 벌레들의 소리. 모두가 성장하고 발산하는 계절이지만, 그 곳엔 엄연한 질서가 있었고 저마다의 속도와 영역을 약속합니다. 동시에 자기의 모양을 자기의 것에 똑 맞추어가며 조용한 가을을 준비했습니다. 그간 한국 땅위에 넘치던 변화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 속도가 얼마나 아찔했는지, 지금 우리는 가을과 화해하고 있지 못합니다.풀들의 자람보다 웃자라 버린 사람들의 울렁한 숲, 그늘의 시원함과 녹색의 여유로움보다는 숨 막히는 열기와 가파른 감성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작가가 사진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우리의 이기적인 거친 욕망과 다름 아닙니다. 난폭하게 흙을 덮고 있는 콘크리트, 하늘을 제멋대로 가로지르는 무거운 전선들, 어질어질한 전신주, 바람에 쓸려 다니는 쓰레기더미, 시끌벅적한 간판과 이정표의 소리들, 주위 것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현란한 색, 그 가운데 간신히 버티고 있는 볼품없는 한 건물. 그의 지적처럼 욕망의 속도가 자연의 그것을 한참이나 멀리 지나쳐 왔습니다. 여름이 푸욱 하고 식은 지금(겨울)에, 한차례 개발의 홍수가 쓸고 간 지금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보다 먼저 상실에 대한 정직한 고백입니다.

 

누군가 서울 한강다리의 화려한 조명들과 현대식 건물들의 잘난 외양, 청계천 공사물의 도시 신화를 강조할 때, 작가는 그 반대편에서 모두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국토의 상당부분이 저토록 방치되어온 이유는 그것들이 어떻게 존재해야 되는 지에 관한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합니다. 굳은살을 개발의 끌로 깊게 밀어낼 때에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시간도 필요할 것이고 속도도 생각해 봐야겠죠. 그동안 고민의 두께가 얼마나 습자지 같았으면, 개발이라고 만들어놓은 것들이 마치 땅위의 습자지처럼 위태롭게 불안불안 펄럭입니다. 도시가 되었든 지방이 되었든 사정은 마찬가지죠. 산업의 입지, 물류의 효율, 주거의 획일이 우선하는 공간에서는 사람 역시 또 하나의 소모품이요, 부속일 뿐입니다.

 

공간과 그 위에 건조, 축조, 시설되는 인공물들의 중심엔 사람의 움직임과 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고려되고 배려되어야 합니다.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때로는 감동스런 그러한 공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주어져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공의 영역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개인의 영역 밑으로 두더지마냥 파고 들어갈 것입니다.  아파트의 평수 늘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생각할 것이고, 크고 넓은 자동차 안에서 경적을 울려댈 것입니다.

그 안에서의 안락함이란 매우 달콤한 것이겠죠. 공간의 격이 올라가야 개인들의 격 또한 올라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왔습니다. 나아가, 물리적인 공공의 공간이 아름답지 못하면 공공의 정신 역시 아름답지 못할 것입니다.  

 

잠깐 그곳의 젊은이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사진에서 보여주는 지방에서의 황폐한 땅에서 평범한 삶을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고 있을(조용필) 순박한 젊은이들이 몹시도 안타깝습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가는 자리에서 무엇이 과연 기억될 런지요.

지역의 오랜 역사(공공의 정신)도 공간과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와 풍경은 둘이 아닙니다. 이제 밖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에는(디자인해야 할 때에는) 먼저 각자의 마음부터 디자인해야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모 카메라회사의 텔레비전 광고가 생각이 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겠다. 그리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나를 의식하지 않게 하겠다.” 그림의 분위기에 취해서, 인기 가수의 목소리에 취해서 그런 생거짓말을 진짜 말처럼 받아들이지 않길 바랍니다. 자꾸 카메라만 들면, 있는 그대로를 보겠다는 둥 객관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둥 그럴싸한 말들로 분扮하는데, 카메라나 또는 그 결과물은 객관이라는 것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짧은 설명을 덧붙여)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의 곁에는 기계를 조작하고 기계를 관통하는 사람의 시선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대상을 보는 감각은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인 것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기 때문이죠.(헨리 소로) 애석하게도 우리가 본 것은 우리 눈에 맺힌 것과 동일하지가 않습니다.

(루돌프 에른하임) 대상이 절대적 객관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감각의 틀 안에 가둬지는 것입니다. 동시에 한사람의 언어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저의 인식론적 입장입니다)

 

대상을 향하는 작가의 스탠스stance는 분명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곳에 있습니다. 크롭crop과 구도, 오브제들의 칼라와 짜임새가 오밀조밀, 아기자기, 예쁘게 드러나는 것은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또한 안정된)에서 비롯합니다.

 

가끔은 감상의 눈길이 대상에 안착하기도 전에 전경前景의 바람에 흔들리고, 분위기에 취해버립니다. 사진이 서정적 감성에 묶여있는 이유로, 오히려 저의 눈에는 대상의 무질서하고 거친 성격, 그리고 직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그의 화법과 다소 엇박자를 이루는 듯합니다. 낭만적 풍경과 사실적 재현 그 중간 어디에 묘하게 걸쳐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작가의 시선이 얼마만큼 대상과 잘 호흡하고 있는지, 그리고 관객들에게 그 상처를 얼마만큼이나 잘 외시denotation하고 있는지, 자꾸 되뇌게 하는 부분입니다.

 

시각은 인간과 환경 간의 거래(에드워드 티 홀)라는 말이 있듯이 사진은 작가의 미감이 대상과 만나는 지점에서 발현합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지점에서의 균형은 변하지 않습니다. 유연하지 못한 시선은 때로 평범한 사진을 만들기도 하고, 주입식 보여주기로 그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의미의 폭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 경계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고민의 대상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요즘 작품들이 론論으로 포장되고 학學의 서자로 둔갑하는, 그리고 그렇게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지적 패션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포장이 필요 없이 정직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작업도 존재합니다. 그럴 때는 우리도 역시 정직해져야 합니다. 이성과 감성의 긴장을 풀고, 작품과의 대화를 시작해보십시오. 그곳에 미술의 심미적 즐거움이 있습니다.

 

김진호 작가의 작품 역시 정직하다면, 여러분은 즉시 무장해제하십시오.전시를 통해 그의 땅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그의 땀 흘림을 기억할 것입니다.

최소한 로스트 썸머는 저에게 부끄러움을 선물했으며, 은근하게 반성을 부탁해왔습니다. 부끄러움이란 우리가 저질러놓은 허물이 어느 작가에 의해 사진으로 재현되고, 그것을 통해 허물을 다시 마주 봐야하는, 낯 붉혀야하는 스스로의 모습 때문입니다. 예술은 때로 부패한 법정보다 더 정의롭습니다. 함부로 죄를 사해주지 않으며, 죄는 죄의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