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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
그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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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규식이의 세 번째 개인전의 글을 또 쓰게 되었다. 갑자기 쓰게 된 것이라 좀 서둘렀던 감이 없지 않다. 이번에는 복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했다. 일상에서 복제를 얘기할 때와는 달리, 예술에서 또는 미술이나 사진에서 복제를 얘기할 때는 좀 더 깊이를 가지고 얘기해야한다. 그래서 어렵다. 우선 재현의 개념의 역사를 알아야한다. 재현의 대상이 되는 실재나 사실, 진리의 개념들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분별할 줄 알아야한다. 그전에는 인식론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최소한 현재까지의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위의 것들이 선행해야 작업들이 설명이 된다. 물론 충분치는 않겠지만. 이번 글에선 설명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복제와 현실이란 두 개의 어휘만 썼다. 사진, 한없이 쉬운 것이지만, 한없이 어려운 것이다.
복제의 즐거움./ 현홍
대체로 복제는 현실에 비해 덜 진짜이고, 덜 가치있고, 덜 평가된다. 현실과 복제가 정확히 일대일 대응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늘 공간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항상 무엇인가가 모자라거나 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실과 복제가 정확히 일대일 대응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진짜같고 더 가치있고 더 평가되는 것이 있다. 예술이다.
예술은 둘 사이에 공간이 있기에 숨을 쉬고, 기거한다. 그리고 임의대로 사이를 채워나간다. 현실에 대한 의혹, 반성, 조롱, 해석 등. 인간이 현실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입장을 구현하기에 그 곳은 관대하고 여유롭다.
그리고 예술의 아름다움(또는 감동)은 둘 사이의 마찰과 긴장으로부터 발화한다. 마치 두개의 부싯돌이 산소를 만나 열을 내고 불꽃을 뿜는 것처럼.
불꽃을 보는 아이의 눈처럼 작가는 그래서 즐거운 것이다. 힘든 과정은 잠시 잊을 뿐이다.
김규식에게 이번 사진은 두 배의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모델을 조립하던 그 아이가 이제는 작가가 되어 다시 사진으로 조립한다. 전쟁을 복제하는 모델들을 사진으로 다시 복제하는 것이다.
복제와 복제 사이의 공간 안에서 그의 기억들은 다시 편집되고, 플라스틱 틀이 아닌 사진의 틀을 손에 쥐고서, 어릴 적 유치했던 전쟁의 시나리오를 수정한다. 작가의 작은 역사가 복제와 함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그의 앞에 서있다. 기억이 연어처럼 뛰노는 순간을 본다.
현재, 우리는 복제의 시대인 현대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때때로 복제는 다음과 같이 현실을 앞지를 때도 있다. 그림 같은 풍경, 영화 같은 인생, 연극 같은 사건, 소설 같은 이야기,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첫사랑. 그리고 사진 같은 그 때의 기억들. 복제가 최소한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만, 현실은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다.
예술, 그거 한 번 해볼만 하다.
김규식 작가의 세번째 개인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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