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 Hong   WORKS. EXHIBITION VIEW. ARCHIVE. EXHIBITION. CV. CONTACT. TEXTS IN KOREAN.

 

 

작가노트 /

모던타임즈 2 / 작가노트.

사디즘 / 작가노트.

모던타임즈 3 / 작가노트.

점과 점들 / 작가노트.

모던타임즈 4 / 작가노트.

키쓰하기 좋은 곳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1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2 / 작가노트.

리크스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3 / 작가노트

 

그 외 /

나에게 사진은 어떠한 의미인가.

모던타임즈 1 / 전시서문.

모던타임즈 3 / 전시서문.

로스트 서머 (김진호 작가) 전시서문.

아파트먼트 (김규식 작가 ) 전시서문.

신이 내리다 (김규식 작가) 전시서문.

복제의 즐거움(김규식 작가) 전시서문.

형, 또 다름 형 (이은종 작가) 전시서문.

인상주의와 포토샵.

인상주의 화가 3인의 시선.

노출과 존 시스템.

고종석 글 중에서.

어머니를 기억하며.

먼꿈.

디자인 서울.

내 친구들과 나티.

메릴 스트립과 수애.

조카 은영에게.

창훈형 홈페이지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 한편.

이방인의 방/김용민.

흑백을 묻다/김현호.

모던타임즈 작가 현홍/ 박대용.

작업을 한다은 것은.

텔 미 유어 스토리.

더텍사스프로젝트 전시서문.

봄.

89학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언젠가 닥칠 일.

1.신과 악마.

100 퍼센트의 선과 0 퍼센트의 악으로 이루어진 신과 100 퍼센트의 악과 0 퍼센트의 선으로 이루어진 악마 를 제외한 것들에선 ‘선과 악의 조합 비율’이 자연 발생합니다. 판단하는 상대에 따라, 대상의 상황에 따라, 수억개의 콤비네이션을 가지게 되어 있죠. 둘 간의 선명한 구별은 종교적, 동화적 수준에서나 논하는 이상(idea)같은 것입니다.1 그래서 신과 악마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쉬운데, 그 외의 것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물의, 사태의 이해(가치 판단)는 두 가지 모두를 조립한 후에,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죠.

기계 혐오가 아닌 이상, 좋은게 좋은거라고 이미 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극구 마다하는 것도 오히려 부정을 위한 부정, 지나친 편집(paranoia)입니다. 스마트폰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긍적적인 면들이 발견됩니다. 그러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선 아직 언급되지 않은 부정의 양도 고려해야합니다. 이미 말했듯 긍정은 부정을 뺀 값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신의 페이스북과 악마의 페이스북을 트윈 모니터로 동시에 서핑해야 합니다.

 

2.감성의 control + c , control + v 의 세계화.

드라마와 드라마 사이에 광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광고와 광고 사이에 드라마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고를 내보이기 위해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말인데, 일리 있습니다. 방송이, 돈이 모이고 흐르는  너무 뻔한 자본의 장(field)이 된 지 꽤 되었지요. 이젠 드라마 자체도 상당 부분 상품광고로 채워집니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이 기계를 통해 소통한다고 믿고 있겠지만 곧 다가올 미래엔 사람이 배재된 채, 기계와 기계가 사람을 통해 소통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 너무 비관일까요? 기계가 사람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이겠죠. 당연한 자본주의의 흐름입니다. 지금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공감할 많은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리고 그 돈은 기계를 만드는 자본가와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또 다른 자본가에게  흘러갑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정서와 정보를 매개하고 즐거움을 선물한다고 하겠지만, 그 기계에 대한 소외(alienation)가 미래에 다시 한번 반복되지 않을까요? 개인은 자본 구조의 마디로 존재하게 되고, 점으로 조직되며, 더욱 고립되고 고독한 존재로 타락합니다.  

우리는 그저 점이 됩니다.

 

3.점과 점들.

내 작업의 모든 소스는 사진입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제 작업의 입구입니다. 입구로 들어온 것들을 마지막까지 그대로 유지하려고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작업을 출구로 내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 저러한 이미지 조각들을 빼고 더하고 합치고 고쳐서, 제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어휘들의 미학적 구성을 통해 문학이 완성되 듯, 이미지 요소들을 평면 위에 시각적으로 재구성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조형합니다.

물론 가짜입니다. 그러나 가짜가 또 다른 정직을 향한 과정의 일부라면 저는 가짜도 좋습니다.

약 250여명의 전화하는 사람들을 부감으로 촬영한 후 몇가지 구성을 해봅니다.

 

A.검은 바탕 위에 통화중인 사람들을 모래처럼 형체 없이 흩뿌려 놓았습니다. 개인들은 작은 점처럼 왜소하게, 검은 바다에 부유하는 별 이름 없는 존재들처럼 보입니다.

B.우리들이 인지하기 어려운 거대한 집단의 방향, 시대의 흐름을, 움직이는 가상의 벌레로 희화합니다.

C.고립되고 동시에 고독한 개인들을 아스팔트위의 작은 돌조각에 비유했습니다.2 공부하던 영국 글라스고우의 대부분의 거리는 검정색 아스팔트위에 하얀 작은 돌조각들이 흩뿌려져 박혀있습니다.  아스팔트 위의 돌들과 동일한 위치에 사람들을 박아 놓았습니다.  그들은 파편처럼, 작은 입자들로 거기에 존재합니다.

D.색깔별로 그룹핑도 해봅니다. 가치, 운동, 취향의 집단화을 재현합니다.

E.흔한 소비재들과 사람들을 병치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소비하면서 살고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 무엇인가에 소비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매일 가치있는 존재로 남기를 기도하지만 그 이면은 고독하고 의미없는 일상으로 채워집니다.

널부러져있는 사물들의 존재감과 사람들의 존재감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4. 그리고 예술..

아마도 인류는 자신과 똑같은 생물-인간을 복제할 때까지 이 기계문명을 끊임없이 밀고 나갈 것입니다. 신의 권좌에 오를 날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두 번째 창세기를 경고하고 두려워하는 나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오만과 기계에 대한 신뢰를 비판하는 과학의 적들도 있습니다. 검은 바다에 빠져있는 저 사람-점들을 구출하고픈 이상주의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이 할 일 중 하나입니다. 깊이 관망하고 비판할 수 있는 특권. 시인이 민족의 더듬이라고 했던가요. 예술가 역시 그렇습니다.  다수의 습관과 다수의 가치에 부역하지 않아도 되는 예술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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