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 Hong   WORKS. EXHIBITION VIEW. ARCHIVE. EXHIBITION. CV. CONTACT. TEXTS IN KOREAN.

 

 

작가노트 /

모던타임즈 2 / 작가노트.

사디즘 / 작가노트.

모던타임즈 3 / 작가노트.

점과 점들 / 작가노트.

모던타임즈 4 / 작가노트.

키쓰하기 좋은 곳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1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2 / 작가노트.

리크스 / 작가노트.

포토그라픽 룩 3 / 작가노트

 

그 외 /

나에게 사진은 어떠한 의미인가.

모던타임즈 1 / 전시서문.

모던타임즈 3 / 전시서문.

로스트 서머 (김진호 작가) 전시서문.

아파트먼트 (김규식 작가 ) 전시서문.

신이 내리다 (김규식 작가) 전시서문.

복제의 즐거움(김규식 작가) 전시서문.

형, 또 다름 형 (이은종 작가) 전시서문.

인상주의와 포토샵.

인상주의 화가 3인의 시선.

노출과 존 시스템.

고종석 글 중에서.

어머니를 기억하며.

먼꿈.

디자인 서울.

내 친구들과 나티.

메릴 스트립과 수애.

조카 은영에게.

창훈형 홈페이지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 한편.

이방인의 방/김용민.

흑백을 묻다/김현호.

모던타임즈 작가 현홍/ 박대용.

작업을 한다은 것은.

텔 미 유어 스토리.

더텍사스프로젝트 전시서문.

봄.

89학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언젠가 닥칠 일.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이복 누나가 두 명 있으며, 친인척과는 별 교류가 없다. 재산싸움으로 모두 콩가루처럼 흩어지다. 난 그 싸움에서 예전에 도망쳐 나왔다.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별 내용없다. 그냥 음악, 좋은 책. 영화에 빠져서 중고등학교 6년을 보낸것 같다. 심야 라디오 디제이가 꿈이었다. 전영혁처럼, 매일 늦은밤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그 힘이 매력적이었다.

사진은 중학교 때 취미로 시작하다.

영어는 전국등수였지만 수학은 반에서 평균에도 밑돌았다. 점수따라, 담임선생님 권유에 따라 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에 입학하다. 3개월을 못버티고 그냥 자퇴해버렸다. 하기 싫은건 하기 싫은 거니까.

친구들과 어울려 정신없이 놀다가보니 벌써 3수째였다. 우연히 신문에서 본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신입생 모집글을 읽고 충동적으로 시험을 봤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해 차석으로 입학하다. 청록파 박두진 선생님도 보고 유명 시인들도 많이 봤다. 시와 소설 중 소설을 선택했다. 한번은 심혈을 기울인 내 첫 처녀작을 가지고 교수회의가 열렸다고 했다. 너무 잘 썼다는 이유다. 담당교수는 내 작품이 2학년 학생치고는 너무 잘 된 소설이어서 선생님들이 모두 의심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은 외국 작품의 번역정도로 결론이 났고, D 학점을 받았다. 그 후로 글쓰기가 싫어졌다. 내 자랑이 아니고 분명한 있었던 일이다. 베트남전의 미군을 소재로 한 글이었는데 그 글의 취재를 위해 베트남의 역사에서 부터 당시 미군의 무기와 전술에 이르기까지 꽤 깊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까지 살아계셨던 아버지는 내가 글쓰는 일을 하게 될까봐 걱정이 크셨다. 그래서인지 입학때부터 등록금은 없었다. 벌어서 다녀야했는데 방위병 끝나고 복학할 3학년쯤이 되선 도저히 돈을 모으기가 버거웠다. 문학의 꿈을 접다. 뭐 원래 글쓰는 것이 간절한 것도 아니었고, 또 글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차, 두번째 학교를 그만 뒀다.

그즈음 사랑하던 첫사랑과도 헤어졌다. 돌이켜보면 결혼했다면 큰일날 뻔 한 철없는 아이었다.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친동생처럼 지내던 그 놈이랑 둘이 도망을 간 듯하다. 둘이 동시에 연락이 안되었으니까.. 지금까지. 부르투스! 너마저...

 

그후 얼마 안되서 클럽에서 디제잉(djing)을 시작했다. 난 원래 음악을 쟝르 구분없이 좋아한다. 믹싱하고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때로 미치게 만드는 그 일이 너무도 좋았다음악을 제대로 믹싱하려면 테크닉이 필요하다. 수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아무 실수없이 퍼포먼스를 할려면 꽤 오랜 시간의 수련이 필요하다. 나름 연습도 많이 했다.

새벽에 일을 끝내고 외롭게 집으로 나서는 것도 꽤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디제잉은 돈이 안된다. 직업이라 하기엔 좀 부족하다 3년 정도 하다가 다른 일을 시작했다. 방송 카메라맨이 되려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방송 외주업체 프로덕션에서 조명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카메라를 하고싶었는데,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어찌 어찌 하다 발을 들여놓기는 했지만, 조명도 꽤 흥미로웠다.

그러다 국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케이블방송이 개국을 한다. 지상파방송국 스텝들이 대거 케이블방송으로 가는 바람에 모방송국 조명팀에 공석이 생겼다운이 좋았다.

 

그때부터 직장생활이라는 걸 시작한다. 대략 20대 후반인 것 같다.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출퇴근 잘하고, 윗사람 말 듣고. 체육대회에서 공 열심히 차면 월급은 꼬박 꼬박 나오는 곳이다. 별 생각 없이 월급 타는 재미로 살다가 취미로 하던 사진을 다시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직장인이 학부를 다시 갈 수는 없었고, 방법은 야간대학원밖에 없는데, 최종학력은 대학교 중퇴니, 대학원을 들어갈려면 방법은 방송통신대학교 밖에 없다. 그래고 일과 관련있는 방송정보학과에 입학해서 4년을 다닌다. 한번은 조명관련한 시험문제가 나왔었는데 4문제 중에 3문제를 틀렸다. 이론과 실제의 간격이란, 컸다.

 

사실 나의 본격적인 독서와 생각하기는 직장생활을 시작할 즈음인 것 같다.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열심히 읽고. 특별한 주제의식은 없었으나 노동과 정치, 철학과 미학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후에 홍익대학원 사진학과에 원서를 냈다. 인터뷰도 하고 포트폴리오 프리젠테이션도 했다. 교수가 시간없다고 나가라는데 끝까지 다하고 나왔다. 내가 얼마를 준비한 것인데, 이대로 나가면 분명 후회할거야.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붙었다. 중간에 두 번 휴학을 하고 한 4년만에 졸업을 한다. 4년 동안 난 대한민국에 나온 사진관련 책들은 모두 읽었다. 형편없는 번역서를 읽고 있을 땐 그 출판사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암실에서 보낸 많은 밤들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름다웠다.

 

당시 내가 사진을 공부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는 카메라와 나의 시각적 활동과의 물리적 관련에 있었다. 카메라는 씨잉(SEEING)을 룩킹(LOOKING)으로 바꿔주는 일종의 프로세스임을 발견한 것이다. , 피상적이고 습관적인 보다(SEEING)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보다(LOOKING)로 매우 훌륭하게 전환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는 신기한 기제가 되는 것이다. 그냥 보는 것과 사진기를 통해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 완성된 사진작품을 거론하기 이전에 카메라 자체가, 그 어떠한 대상을 촬영하려는 작가의 태도에 이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러한 판단은 지금까지 매우 유효하며, 또한 내 작업 저변에 깔려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첫번째 내 개인전(석사청구전)의 타이틀은 <모던타임즈> 였다. 첨엔 그 갤러리 지하에서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지하공간에 창고가 들어오는 바람에  2층 메인 공간으로 가게 되었다. 꽤 문턱이 높은 갤러리였는데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즐거운 추억이다.

 

모던타임즈는 말 그대로 <현대>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난 다소 추상적인, <현대성>에 관심이 많다. 근대를 거쳐 현대, 즉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성취해온 온갖 현대적인 것들, 기계, 제도, 자본등이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를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난 민감하다. 금붕어가 어항속의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듯 우리 역시 우리의 외적 환경과 유형의 무형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난 우리가 미쳐 몰랐던 사실에 더 집중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모던타임즈 시리즈는 그렇게 시작했다.

 

모던타임즈 1시리즈는 사진적 비유를 통해 현대의 다양한 원리와 제도들이 우리의 경험공간을 그것들의 모습 그대로 디자인해 나가는 것을 시각화해보려는 작업이었다. 여기서 사진적 비유란  <A B와 같다>는 언어적 수사를 차용한 것인데, 하나의 이미지를 또 하나의 이미지에 빗대는 일종의 시각적 방법론이었다.

 

강의석과 통닭구이들,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자판기에서 음료수들이 떨어지는 모습, 소변기 앞에 줄지어 있는 남성기들과 일렬로 정렬되있는 수도꼭지들, 무빙워크위의 사람들과 컨베이어벨트위의 물건들...

공간을 기계적으로 분할하여 일상의 경험이 경제적으로 조직되고, 조각조각 깨어져나가는 모습들을, 기계설계나 동작의 대상이, 상품이 아니라 사람으로 치환되어 인간성이 물성으로 타락해 나가는 모습들을, 그 결과 개개인의 미세한 진동들은 무시되고 현대성이란 무거운 힘으로 내리눌리게 되는 우리들의 인간성을 사진으로 꼭 재현해보고 싶었다.

 

졸업 후 모던타임즈 2 시리즈와 사디즘 시리즈를 전시했다. 아직 전시는 못했지만 모던타임즈 3 시리즈도 마무리했다.

 

졸업 후의 작업은 모두 합성이다. 합성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합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초기작이 훨씬 나았다고 말해온다. 더 사진적이라 했다. 사진이 회화처럼 되고 있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사실 많다나는 반감을 가지는 쪽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이슈는 사진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술사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논쟁거리임에 분명하다.

 

내 생각에 사진의 현재는 미술사로 말하자면 인상주의가 시작되던 모더니즘 정도에 와있는 듯하다. 있는 그대로를 찍어야하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언제부턴가 사진을 미술의 한 재료 정도로만 인식하는 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진은 하나의 소재가 되고 합성의 대상이 되며작가가 원하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통로역할쯤이 된다. 인상파 화가들이 오래전 그러했듯이, 사진을 하는 이들도 있는 그대로를 재현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된다.  사진 역시 미술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이렇다.

미술을 포함하는, 사실을 그대로 베끼려고 하는 매체들의 역사는 단순한 재현으로부터 작가의 자의적이고 생산적인 창작쪽으로 진화한다. 재현이나 기록, 기계성에 바탕을 둔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예술은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그것을 표현해줄 통로간의 부단한 변주라고도 볼 수 있다. 작가의 창작의 크기와 모양이 이미 만들어져있는 통로의 그것과 맞질 않는다면 작가는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창작을 필요로하는 모든 예술의 장르는 언제나 형식을 무너뜨리고자 하고 재료를 넘어서려고 하며 그래서 항상 그 너머의 무엇인가에 닿으려고하는 욕망으로 변색한다. 그래서, 사진 역시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새로운 흐름이 생기면 대체로 마찰이 뒤따른다. 사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떤이는 굳이 합성을 할거면 그림을 그리지 왜 사진을 하느냐고 물어올수 도 있다. 맞는 질문일까? 그 질문은 그림은 작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사진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나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러한 질문의 유효기간이 이젠 끝나 버린 것이다. 또 누군가는 누구나 쉽게할 수 포토샵으로 조작하는 것은 저급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동네 문방구만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그림붓이다. 모두가 붓을 쥐고 있다고해서 모두가 좋은 화가가 될 수는 없는 법. 쉽게 구하고 다룰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내느냐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진의 이러한 흐름이 어떤이에겐 다소 못마땅하거나 아쉬울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바야흐로 사진의 모더니즘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나 당위를 부정하는 쪽도 아니다. 사진 그 자체에서  사실(객관, 기록)을 전하려는, 또는 미적인 무엇인가를 끌어내려는 작가의 행위 또한 다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거친 사진이 가지는 나름의 아름다움과 무게 역시 나는 거부할 수가 없다. 그렀다면 나의 입장은 이렇다. 난 사진이 가지는 정직함이 너무나 좋다.  하지만 그 정직에서 벗어난 거짓도 좋다. 그 거짓이 또 다른 정직을 향한 과정의 일부라면 말이다. 예술은 과학이 아닌 이유에서다. 그래서 소재나 재료, 딱딱한 기계와 손에 익은 과정은 작가의 부드러운 시선과 창의력보다는 약 반계단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형식보다는 내용이 문제라는 내 생각엔 아직 변함이 없다. 필요하다면 언제나 난 합성을 할 것이고또한 필요하다면 필름에서 바로 이미지를 얻어낼 것이다. 난 그것이 옳다고 본다.

 

합성 문제에 대해 할애를 많이 한 감이 있긴 하다. 내 작업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이므로  나름 정리된 생각을 솔직히 밝혀두는 것도 내 소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개인전이었던 사디즘을 발표한 후엔,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뿌리깊었던 내 미대 콤플렉스를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었다. 사실 제대로 된 미대를 못 나왔다는 것이 못네 아쉬었다.

유학을 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10여년 넘게 조명을 한 덕에 난 영상과 빛을 조금은 이해한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어렵고, 동시에 겸손해졌다빛에 대한 겸손과 그 신비로움에 대한 깨달음은 아주 오래 갈 거 같다.

 

이런 저런 준비로 1년을 보낸다. 어디로 갈건지 생각하다가 산업혁명이 처음으로 시작된, 영국, 거기서도 와트형제가 증기기관을 처음으로 발명했다는 그래서 그 혁명의 시작점이었다는 글라스고우로 결정했다. , 모던타임즈가 시작된 곳이다. 그곳엔 내가 전부터 알고 있었던, 오랜 역사의 <글라스고우 스쿨 오브 아트>라는 작은 예술학교가 있다. 졸업생들이 터너상을 몇차례 받는 바람에 국내에서도 좀 알려지긴 했지만, 원래 그곳은 그 상과 무관하게 파인아트로 이미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합격소식을 듣고 기뻤다. 더군다나 그곳엔 토마스라는 훌륭한 선생님이 계신 곳이기도 하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안셀 아담스의 제자였으며 매우 훌륭한 암실 기술자로도 유명하다. 그 사람을 보게되다니. 기뻤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의 두 딸에게 몇천원짜리 싸구려 귀걸이를 선물했는데, 한번은 나를 불러다 놓고 몇달간 그 뇌물(?)때문에 크리틱을 맘놓고 할 수 없었다고 너무도 진지하게 얘기하시는 걸 보고 깝짝 놀랐다. 졸업 후에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밥 딜런의 앨범 <모던타임즈>를 선물해 주신다. 좀 감동이었다. 선물은 그렇게 하는건가.

 

글라스고우는 산업혁명이후 영국에서 런던 못지않게 산업적으로 부흥한 도시였으나 그 후 새로운 정보혁명에 도태되고 위스키와 마약으로 쇠퇴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 그 도시가 다시 활기를 띠는 이유의 중심엔 예술과 디자인이 있다.

 

산업혁명의 잔재와 예술로 거듭나는 지금을 공부하다.

점과 점들 시리즈로 졸업을 했다스마트폰을 사용하면 할수록 덜 스마트해지는 사람들의 군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편리 뒤에 숨어있는 기계의 오만을 말하고 싶었다. 그 문명의 순항 뒤엔 결국 사람들은 점처럼 소외되고 사소할 대로 사소해 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싶었다글라스고우의 약 250여명의 사람들을 촬영 한 후, 시내 인도에 깔려있는 아스팔트와 딥틱으로 작업을 했다. 사진위의 사람들의 위치를, 아스팔트 위에 박혀있는 하얀 작은 돌들과 정확히 같은 위치에 구성했다.

 

글라스고우와 런던에서 몇차례 전시를 하고 다시 서울로 올 초에 돌아왔다.

이젠 전업작가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지금 작가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은 - 작가가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설치를 하던, 작곡을 하던,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 작가라는 것은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그 직업말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직업 밖의 직업이다.

분명 작가도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일의 성격이 다르다. 돈을 벌기 위한 현세적 목적도 아니고, 명예와 권력을 쫒는 이상도 없다. 그런 것들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타자화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 안을 항상 들여다 봐야 하기 때문에 밖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 좀 떨어져있어야 하고, 사는 속도도 달라야 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아닌 사람들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직업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므로 -.

 

다만 작가는 그러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일뿐이다. 어쩌면 그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기질이나 배경을 안고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다른 인간의 부류, 즉 다소 별종이다.

 

그래서 작가가 하는 일을 직업으로 간주하는 순간 많은 모순과 마찰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 작가의 길을 간다면 그는 신의 그림자를 쫒는 외로운 투사일수도 있다.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외하는 겸손한 재현자일 수도 있다. 우주와 인간의 삶을 통찰하고자 하는 구도자일 수도 있다. 작가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르다.

좀 비켜나있다.

난 그런 삶에 매료되어 있다.

 

이태준 선생은 그의 명문장 무서록에서 작품은 개인의 뿌리에서 피는 꽃이라 했다. 또한 자연이 준 자기만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정치가나 실업가는 가져보지 못하는 예술가만의 영광이라고 했다.

 

과연 나의 뿌리에선 무엇이 만들어 질까.

궁극에 난 무엇을 완성하고, 남길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해서 나는 또한 작가의 길을 간다. 별종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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